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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레터] “선진국 아니었어?” WTO 개도국 ‘졸업’ 선언 후폭풍 오나 - 한국일보

[이슈레터] “선진국 아니었어?” WTO 개도국 ‘졸업’ 선언 후폭풍 오나 - 한국일보

 미중 무역분쟁, 트럼프 압박 속 농업 분야 개도국 지위 포기 
 정부 “불이익 없다” 설명에도 농민단체 등 거센 반발 이어져 
홍남기(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섰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1996년 내ㆍ외신의 평가입니다. 신흥 개발도상국 출신으론 유일하게 선진국들이 모인 OECD에 회원국으로 가입한 만큼 국민들의 어깨도 ‘으쓱’해졌죠.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지금,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공식 발표했어요. 우리나라, 지금까지 선진국이 아니었던 건가요. 갑자기 개도국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내려놓게 된 이유는 뭘까요.

 ◇그래서 한국은 선진국이야, 개도국이야? 

각 기관마다 개도국과 선진국을 나누는 기준은 달라요. 유엔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OECD 등은 제각기 시점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을 일찌감치 선진국으로 분류했습니다. OECD 회원국 중 개도국에 원조를 해주는 나라들의 모임인 ‘개발원조위원회(DAC)’에도 한국은 2009년 11월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죠. 개도국을 돕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셈이었죠. 이어 2016년에는 국제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도 들어가게 됐어요.

프랑스 파리를 방문 중인 최상목(오른쪽) 당시 기획재정부 차관이 2016년 7월 1일(현지시각) 프랑스 재무부에서 열린 파리클럽 60주년 행사에 참석해 크리스틴 리가르드 당시 IMF 총재와 악수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반면 WTO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를 개도국으로 보고 있었는데요, 1995년 출범 당시 받은 지위가 아직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엔 가입 국가가 스스로 선언하는 대로 관련 지위가 부여됐다고 하네요. 1996년 OECD에 가입하게 되면서는 WTO 중 농업 부문에서만 개도국 특혜를 받기로 했죠. WTO 개도국은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고, 국내 생산품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또 회원국이 합의한 관세 인하 폭과 시기 조정 등에서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적용 받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국내 농업 보호 등을 위해 그 동안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았던 거죠.

 ◇왜 갑자기 개도국 특혜를 포기하나요 

정부의 개도국 포기는 사실 ‘트럼프가 쏘아올린 공’ 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WTO 개도국이 불공평한 이득을 얻고 있다”며 한국을 비롯한 몇 개 나라를 콕 집어 지적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OECD 가입국이면서, 주요 20개국(G20) 회원이고,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인 동시에 세계 상품무역에서 비중이 0.5% 이상 되는 국가가 개도국 혜택을 누려선 안 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이에 해당되는 브라질, 대만, 싱가폴 등은 그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어요. 한국 역시 이 4가지 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만큼 미국의 경고를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지난 7월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의 개도국 혜택 중단 관련 지시를 내리기도 했죠.

한국일보 자료사진

트럼프의 발언은 원래 중국을 겨냥한 측면이 컸죠.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개도국 특혜를 계속 누리고 싶어하는 중국은 미국과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었어요. 이런 갈등 때문에 불똥이 계속해서 튀자 우리나라는 자동차 관세 등을 포함한 통상 문제, 내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을 고려하고, 미국과 관계를 좋게 가져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이번에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거죠.

 ◇그럼 국내 농가는 어쩌죠 
'WTO 개도국 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회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한국의 WTO 개도국 지위 유지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농민단체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요. 특히 이번 결정이 정부의 농업 부문 보조금 삭감 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거죠. 한국이 이제 개도국이 아니라면 농산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도 지급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영호 한국농축산연합회 회장은 2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고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건 국산 먹거리를 통째로 미국에 바치겠다는 얘기”라며 “300만 농업인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하지만 정부는 개도국 포기와 상관없이 쌀 등 민감 분야엔 예외적 보호 조치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수입 쌀에 대한 513% 관세도 유지하고, 보조금 역시 WTO 제재를 받지 않는 공익형 직불제를 내년부터 도입할 방침입니다. 또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당장 관련 혜택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하네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현재 농산물 관세율이나 농업보조금총액(AMS)은 새 농업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유지된다”며 “가까운 장래에 WTO 농업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농업분야를 포함한 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은 회원국 별 입장 차로 10여년 넘게 중단된 상태라고 합니다. 개도국 지위 졸업을 선언해도 당분간 선언적 의미 외에 불이익은 없다고 본 셈입니다. 다만 미국이 이미 개도국 지위를 내놓은 한국에 농산물시장 추가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정부 차원의 주도 면밀한 대책과 준비는 필요하겠죠.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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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5 07:12: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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