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WTO 개도국 포기는 통상분야 국치” 반발 - 한겨레
11월30일 여의도에서 전국농민대회
“내년 총선에서 정부여당 심판할 것”
전남지역 농민단체들이 지난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정부의 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막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제공
전국의 농민들이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통상분야의 국치로 규정하고 정권퇴진 투쟁을 예고했다.
WTO 개도국 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회원들은 2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어 “정부는 트럼프의 압력에 굴복해 통상주권과 식량주권을 포기하고 농업을 절벽으로 내몰았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이날 상복 차림으로 ‘개도국 지위 유지하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른 채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곳곳의 농민들도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며 11월 농민대회와 내년 4월 총선을 통해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다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성명을 내어 “우리 농민에게 나라는 과연 있는가. 트럼프 말 한마디에 농민의 운명을 팔아넘겼다”고 비난했다. 전농은 “이 조처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세계무역기구 출범 이후 몰락의 길을 걸어온 한국 농업이 낭떠러지로 떠밀리게 됐다”며 반발했다. 전농은 또한 “전국의 들판에 농민의 한숨 소리가 가득하다. 트럼프가 방위비로 요구하는 6조원이면 전국 100만 농가에 매달 50만원, 전체 농민 240만명에게 20만원 이상 농민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미국의 압력을 이겨내고 통상주권과 식량주권을 수호하라”고 촉구했다.
농민들은 개도국 지위 포기로 국내 농업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 입을 모았다. 박흥식 전북농업인단체연합회 회장은 “미국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우리 농업을 개방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쌀이 핵심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우리나라 식량자급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다”고 반발했다. 박 회장은 이어 “1조4900억원의 보조금을 허용해 그나마 국내 농업을 유지해왔으나, (개도국 지위 포기로) 앞으로 이 보조금을 7천억원밖에 쓸 수 없게 되면 쌀값이 하락했을 때 아무런 대안이 없다. 결국 쌀농사를 짓지 말라는 소리”라고 비통해했다. 김희상 전농 청주시지부 사무국장도 “개도국 포기는 농업 포기”라며 “개도국 포기와 함께 미국 등 국외 농산물이 홍수처럼 밀려들어 올 것이다. 칠레의 경우 농장 95%가 거대 자본에 팔렸다. 개도국 포기와 함께 기업화, 자본화, 규모화한 국외 식량·종자 회사에 우리 농업이 빠르게 종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어 “추수기인 지금 일손이 모자라 겨를이 없지만 수확이 마무리되면 농민들이 모일 것이다. 생존을 위한 농민들의 저항이 거셀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행덕 농민의길 의장은 “농업을 포기한 정권을 더 밀어줄 수는 없다. 고 백남기 농민이 농업을 살리기 위해 외치며 쓰러졌던 정신을 이어받아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박형대 전농 전 정책위원장은 “수입개방 농정으로 빈사 상태에 빠져있던 농업이 쌀 관세율과 농업보조 인하로 결정타를 맞게 됐다. 오늘은 외교 통상분야의 국치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내년 총선에서 농업을 포기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김성보 전농 광주전남연맹 사무처장은 “한국 농업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연명치료마저 포기한 정부·여당은 내년 총선에서 농민들한테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민들은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와 농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점에도 서운함을 내비쳤다. 이갑성 광주시농민회 부회장은 “식량자급률 24%인 한국은 농업 분야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야 마땅하다. WTO가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는데 트럼프 말 한마디에 농민과 국회의 목소리도 듣지 않고 농업의 미래를 내줬다”고 성토했다.
농민들은 오는 11월30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농민대회를 열어 정부·여당의 농업 포기 정책을 성토할 계획이다.
안관옥 오윤주 박임근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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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5 06:41:29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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