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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L 단독인터뷰] 황인범, 왜 러시아를 택했나? "축구가 더 재밌어졌다" - Go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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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유럽 진출 1호 황인범 "러시아 온 후 축구의 재미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황인범, 러시아를 택한 이유는?
▲동유럽 명장 슬러츠키의 적극적 구애
▲"다시 재밌는 축구를 찾아가는 기분"

[골닷컴] 한만성 기자 = 올여름 이적시장에서 유럽 진출 1호는 북미프로축구(MLS) 구단 밴쿠버 화이트캡스를 떠나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명문 루빈 카잔과 3년 계약을 체결한 황인범(23)이다.

루빈 카잔은 2000년대 들어 강팀으로 발돋움했다. 이 덕분에 루빈 카잔은 2000년대 중후반을 시작으로는 유럽클럽대항전(챔피언스 리그, 혹은 유로파 리그)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했고, 2008년과 2009년에는 2년 연속으로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루빈 카잔은 지난 약 4년간 전력이 하락하며 2015/16 시즌을 시작으로 10위, 9위, 10위, 11위에 머물렀다. 이후 루빈 카잔은 리빌딩을 시작하며 지난 시즌 도중 러시아 대표팀, 자국 최고 명문 CSKA 모스크바, 그리고 잉글랜드(헐 시티)와 네덜란드(비테세)를 이끈 동유럽의 명장 레오니드 슬러츠키 감독을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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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러츠키 감독을 선임한 루빈 카잔은 착실하게 전력을 보강했고, 황인범은 구단이 추진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의 중심이다. 루빈 카잔은 슬러츠키 감독을 선임한 후 맞은 첫 번째 여름 이적시장에서 황인범 외에도 러시아 대표팀 측면 공격수 올레그 샤토프(30)를 제니트에서, 자국 명문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에서 골키퍼 니키타 메드베데프(25)를 영입했다. 이 중 황인범은 루빈 카잔이 올여름 이적료 250만 유로(현재 환율 기준, 한화 약 40억 원)로 가장 큰 돈을 투자해 영입한 선수다. 실제로 황인범은 슬러츠키 감독과 올레그 야로빈스키 루빈 카잔 단장이 오매불망 영입을 희망한 선수였다.

황인범의 루빈 카잔 이적이 공식 발표되기 전까지 유럽 현지에서는 그가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 마테오 코바시치(첼시) 등을 배출한 크로아티아 명문 디나모 자그레브행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황인범 또한 7일(한국시각) 전화로 진행된 '골닷컴 코리아'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챔피언스 리그 출전이라는 꿈을 이룰 기회가 주어질 디나모 자그레브가 자신과 접촉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 또한 챔피언스 리그라는 메리트를 고려할 때 루빈 카잔보다 디나모 자그레브 이적을 희망했지만, 슬러츠키 감독과 야로빈스키 단장으로부터 느낀 '간절함'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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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럽의 명장 슬러츠키 감독의 설득이 마음을 움직였다

"아시겠지만 디나모 자그레브 쪽으로 사실 얘기가 많이 됐었는데, 갑자기 루빈 카잔이 오퍼를 넣었어요. 그때부터 루빈 카잔 단장님, 감독님이랑 계속 통화를 했고요. 감독님이 저에게만 따로 전화를 세 번 정도 하셨는데, '마음 같아서는 더하고 싶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저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주셨어요. 레오니드(슬러츠키) 감독님이 저를 얼마나 원하는지, 제가 어떤 역할을 맡아줬으면 좋겠는지, 그리고 제가 가진 장단점을 다 알고 계셔서 믿음이 많이 갔어요. 감독님이 저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있는 만큼 '내가 저기로 가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여쭤보니까 다 설명해주시더라고요. 저를 8번(중앙 미드필더), 10번(공격형 미드필더)을 생각하고 계셨고 6번(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도 볼 수 있는 걸 아셨는데, '너는 공격적인 위치에서 뛰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네가 왔을 떄 우리 팀의 발이 빠른 공격수들한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또 감독님은 '팀에 좋은 선수들은 많지만, 직접적으로 경기에 영향을 미치면서 상황을 컨트롤하는 선수는 부족하다. 그래서 네가 와서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저를 얼마나 원하는지가 제가 선택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슬러츠키 감독은 동유럽에서 최정상급 지도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황인범은 대표팀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 전 소속팀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는 마크 도스 산토스 감독의 손을 거치며 포르투갈 출신 지도자를 경험했봤으나 슬러츠키 감독은 또다른 유형의 축구를 구사하는 지도자다. 황인범에게는 새로운 축구를 경험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황인범은 무엇보다 슬러츠키 감독이 다양한 전술을 준비해놓은 채 경기에 나서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감독님께서는 제가 이적하기 전에 통화를 할 때 모습, 그리고 여기에 온 후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보여주시는 모습이 180도 달라요. 밖에서는 선수들이랑 장난도 많이 치시거든요. 아빠 같은, 삼촌 같은 그런 분위기인데. 운동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면서 엄청 몰입하시더라고요. 전술도 설명해주실 때 정말 준비해놓은 게 많으시더라고요. 전술적 플랜을 한두 개 정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준비하세요. 전반전이랑 후반전 경기력이 많이 달라지는 게 저희 팀의 특징이에요. 전반전에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으면 감독님이 바로 라커룸에서 수정해주시니까."

"후반전 앞두고 감독님이 지시하시는대로 따라가면 신기하게 우리가 경기를 주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을 봤을 때 '이래서 유명한 감독이 되신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확실히 축구에 대한 열정도 굉장하시고요. 전술적인 부분을 정말 디테일하게 잘 해주시거든요. 지금까지는 저한테 수비보다는 공격적인 역할을 더 주셔서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많이 공격적으로 뛰고 있는 거 같아요."

# 디나모 자그레브가 아닌 루빈 카잔을 선택한 이유

루빈 카잔보다 황인범에게 먼저 접근한 디나모 자그레브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뿐만이 아니라 자국 리그에서도 절대강자로 군림한 북유럽의 강호다. 만약 황인범이 디나모 자그레브의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면, 그는 챔피언스 리그 무대를 경험하며 크로아티아 무대에서는 '이기는 방법'을 터득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황인범은 지금 당장 챔피언스 리그 무대를 밟는 꿈과 크로아티아에서 매 시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오리는 것보다는 매 경기 더 치열한 경기에 나서 선수로서 성장할 기회가 주어질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의 루빈 카잔을 택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는 게 저의 꿈이기 때문에 고민을 더 많이 했죠. 디나모라는 팀이 물론 챔피언스 리그 예선을 거쳐야 하지만, 본선 진출 확률이 굉장히 높은 팀이잖아요. 리그에서는 사실 독주하는 팀이고. 처음에는 디나모로 가고 싶었는데, 제가 루빈(카잔)이랑 디나모의 오퍼가 있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일단 매주 경기 일정이 있는 리그부터 보자. 크로아티아로 가서 매 경기 3-0, 4-0으로 쉽게 이기고 그런 걸 원하면 크로아티아로 가면 되겠지만, 챔피언스 리그는 예선을 치르는 팀이기 때문에 본선 무대는 보장된 게 아니지 않느냐"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도 디나모 자그레브가 사실 챔피언스 리그 본선에 많이 나가잖아요. 그래서 저는 고민이 많이 됐죠.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챔피언스 리그에 나간다고 해도 자국 리그에서 뛰는 경기수가 훨씬 더 많잖아요. 그렇게 생각을 했을 때 제가 챔피언스 리그만 보고 크로아티아로 가서 축구를 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매 경기 정말 치열하게, 선수로서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어떤 점을 채워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줄 리그로 갈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루빈이라는 팀으로 결정을 하게 됐어요. 마음이 루빈 카잔 쪽으로 끌렸고, 온 이후 쭉 축구를 너무 재밌게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디나모 자그렙은 세계적인 미드필더를 굉장히 많이 배출한 팀이지만, 그 중 대부분은 크로아티아 선수나 구단 유스 출신 선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도 처음에는 '내가 가서 잘하면 되니까, 경쟁해서 이겨내면 되니까'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가려고 했는데, 차분하게 생각해본 결과 루빈 카잔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더라고요."

# 예상치 못한 대선배 김동진의 도움

황인범의 유럽 진출설은 그가 작년 초 밴쿠버로 향하기 전부터 수년간 이어졌다. 어린 시절 포르투갈 진출설이 제기된 그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이어 A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몇몇 구단으로부터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처음 그의 러시아 진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에 놀란 국내 축구 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선언되며 이적시장이 얼어붙은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빅리그 진출은 여의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고민에 빠진 황인범은 본인이 직접 수많은 경로를 거쳐 정보를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는 과거 제니트에서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UEFA컵(현 유로파 리그) 우승을 경험한 선배 김동진(38)의 도움도 있었다. 기로에 놓인 채 밤잠까지 설치며 거취를 고민하던 황인범은 유럽 현지에서 전해준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 대한 높은 평가, 그리고 선배 김동진의 도움 덕분에 확신을 품고 행선지를 결정했다.

"김동진 선배님은 제가 얼굴을 뵌 적도 한번도 없고, 전혀 인연이 없는 선배님인데(웃음). 제가 1, 2주간 너무 고민을 많이 하다가 선배님한테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냈어요. '첫 인사를 이렇게 문자로 드려서 정말 죄송한데, 너무 고민이 많은 상황이고 선배님은 러시아 리그 경험도 있으시니 객관적으로 조언을 해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연락을 드렸거든요. 그런데 정말 너무 감사하게도 장문의 답장을 해주셨어요. 러시아 리그의 장단점, 원정 경기 갈 때 장거리 비행이 많이 힘들다는 점, 그러면서도 '인범이 능력이면 어디든 가서 잘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했어요."

"김동진 선배님은 제가 한국 가면 꼭 만나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만약 제가 선배였고, 본 적도 없는 후배가 저한테 조언을 구했다면 '과연 나는 이렇게까지 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성의 있게 조언을 해주셨거든요. 그 전까지는 저도 러시아에 대한 걱정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여기저기 진짜 많이 물어봤어요. 한국 쪽에 있는 선수들이나 선배형들은 사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제가 유럽 쪽에 있는 제 예전 동료들이나 에이전트 분들한테 물어봤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러시아 리그에 대한 인식이 한국에서는 '거긴 아니지'라고 생각하고, 솔직히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유럽 쪽 사람들은 '유럽 5대 리그를 제외하면 러시아 리그가 탑 원, 투 안에는 들어간다면서 인정을 해주더라고요. 인정을 받고 있는 경쟁력이 있는 리그라는 사실을 제가 확인을 하니까 거의 뭐 100%로 마음이 기울더라고요. 그래서 오게 된 것 같아요.

# 이적 직후 성사된 데뷔전, 그리고 기분 좋은 스타트

그러나 황인범은 깊은 고민 끝에 입성한 러시아 무대에서 빠른 적응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카잔에 도착한 후 단 두 차례 팀 훈련을 소화한 지난달 중순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황인범은 이날 약 10분간 뛰며 팀이 러시아 최강팀 CSKA 모스크바를 3-0으로 꺾으며 네 경기 만에 올 시즌 첫 승을 거두는 데 보탬이 됐다. 그는 이후 홈에서 열린 두 경기에도 연이어 출전해 27일 우파를 상대로는 교체 출전 후 단 1분 만에 그림 같은 발리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렸고, 31일 탐보프전에서는 선발 출전해 루빈 카잔이 1-2로 뒤진 후반전 추가시간에 정확한 코너킥으로 조르제 데스포토비치의 극적인 동점골을 도왔다. 루빈 카잔 이적 후 세 경기를 치른 황인범의 현재 성적은 145분 출전, 1골, 1도움, 키패스(기회 창출) 9회로 시즌 초반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이틀간 팀 훈련을 CSKA 모스크바 원정을 갔는데, 감독님께서 경기 전날 저한테 '몇 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출전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일단 되게 즐겼던 거 같아요. 경기 자체를. 상태팀도 CSKA 모스크바가 굉장히 좋은 팀이고, 러시아 리그는 지금 관중이 25% 허용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경기장이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아, 축구 할 맛 난다'고 생각하면서 데뷔전을 즐긴 거 같아요."

"두 번째 경기는 저희 팀이 전반전에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고, 전반전 끝나고 화장실 갔다가 워밍업을 나가려고 하는데 감독님이 바로 투입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내 생각보다 감독님께서 나를 더 신뢰를 해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들은 몸상태를 처음에 몇 초만 뛰어봐도 '오늘은 가볍구나' 혹은 '무겁구나'라는 걸 아는데. 사실 '무겁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 천천히 빨리 호흡 트이고 해야겠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순간에 제가 있는 곳에 공이 떨어지는데 집중력은 높은 상태였고. 최대한 공을 맞추자고 생각했데 생각보다 훨씬 잘 맞았어요(웃음)."

러시아에 도착한지 약 3주밖에 안 된 황인범에게도 여전히 현지 생활은 낯설다. 밴쿠버에서는 가족과 함께 생활한 그는 현재 어머니와 형이 비자 발급을 기다리고 있는 터라 홀로 타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먼 미래를 내다보면 러시아라는 생소한 곳에 적응을 해야 하는 지금의 시간이 결국에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한, 황인범은 미국을 포함해 북미 내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진 데다 유럽 진출이 최종 목표인 자신의 커리어를 생각할 때 더는 이적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단 저도 지금껏 살면서 러시아라는 곳에 와서 축구를 하게 될 줄은 생각조차 전혀 안 했죠(웃음). 이번 시즌 코로나 때문에 모든 리그가 변수가 많았지만 특히 MLS는 지금도 거기서 그렇게 일정을 강행하는 걸 보면 저는 '저렇게까지 해야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수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제 밴쿠버도 앞으로 두 경기 더 하고 나면 캐나다에서 다시 미국으로 넘어가서 격리된 상태로 리그를 한달 넘게 한다는데 그게 사실 말이 쉽지 참 힘든 거잖아요. 그래서 계속해서 이적을 추진했고, 올여름에는 '지금 이 타이밍에 내가 만약에 밴쿠버에서 나가지 못하고 유럽 진출을 미루면 미룰수록 다시는 못 갈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저도 이제 나이가 무조건 어린 나이도 아니니까요. 경기력 유지하는 부분에서도 MLS에서는 쉽지 않다는 걸 제가 너무 잘 알고 있었죠."

"미국에서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너무 뻔하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아, 지금이 나가야 되는 타이밍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러시아에 와서도 영어를 하는 사람들과는 소통이 가능하지만 러시아어만 쓰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쉽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 2-3주 동안은 재밌게 생활하고 있어요. 저는 사실 이런 상황을 재밌어 하거든요.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게, 제가 또 언제 이런 경험을 하겠어요. 코로나 때문에 밖에 잘 못 나가는 건... 사실 저는 코로나가 아니어도 딱히 밖에 자주 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오히려 다행인 거 같아요(웃음)."

# 유럽 진출 후 돌아본 MLS에서 겪은 어려움

황인범이 불과 지난 7월까지 몸담은 밴쿠버는 MLS에서 수년째 성적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을 뒤집기 위해 지난 2019 시즌을 앞두고 포르투갈 출신 도스 산토스 감독을 선임하고, 황인범을 영입했으나 팀 성적은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대표팀과 소속팀 일정을 병행해야 하는 황인범은 거대한 대륙인 북미에서 이어지는 장거리 비행과 지나치게 수비적인 축구를 할 수밖에 없었던 밴쿠버의 상황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한, 가뜩이나 체력적인 부담이 큰 환경에서 시즌 일정의 절반 이상을 부상 위험이 있는 인조잔디 구장에서 소화해야 한다는 점도 황인범에게는 큰 짐이었다.

"사실 지난 1년 반 동안 몸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많았었는데, 밴쿠버라는 팀의 상황이 제가 뭔가를 하기가 어려웠어요. 물론 저도 제가 더 좋은 선수였다면 혼자 힘으로 밴쿠버라는 팀을 바꿔놓을 수 있었겠죠? 그래서 저는 최대한 팀의 문제를 제 자신한테 찾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스스로 저의 능력을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아직은 혼자 경기를 바꿔놓고 LAFC의 카를로스 벨라 같은 선수가 될 능력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래도 최대한 팀에 도움이 되고 싶고, 팀을 더 높은 위치로 끌고 가고 싶은데, 힘이 들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었고. 경기에 나가면 공격하는 시간보다 수비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많았고, 수비만 하다가 힘이 다 빠져서 어쩌다가 공이 왔을 때는 제 플레이를 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은 제가 축구를 재밌게 즐기고 있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대전에서 최문식 감독님과 함께 있었을 때 했던 축구를 여기 와서 다시 하고 슬슬 찾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만큼 축구를 즐기고 있어요. 그렇게 보면 밴쿠버에서 보낸 지난 1년 반이라는 시간도 모든 게 득이었다고 얘기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지금 제가 행복한 상황에서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올여름까지 1년 반 동안 캐나다에서 보낸 시간도 감사한 시간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야 할 거 같아요."

"인조잔디는 밴쿠버 감독님께서도 시즌 도중에 저한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네가 하는 턴동작 같은 게 인조잔디에서는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항상 고민하고 있었던 부분이거든요. 제가 직접 카운트를 해보니까 밴쿠버에서는 1년에 20~24경기 정도를 인조잔디에서 하더라고요. 힘든 부분이 많이 있더라고요. 제가 나이도 젊고, 무릎이나 발목에 문제가 전혀 없을 때도 경기가 끝나면 여기저기 쑤실 때도 있고. 지금 카잔에 와서는 경기장 분위기나 잔디 상태가 너무 좋더라고요. 이런 환경에서 하면 정말 재밌게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 8개월째 못 밟은 한국땅…"하루라도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이 이어지며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 일정이 무기한 연기된 현재, 황인범은 지난 12월 국내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을 마친 후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밴쿠버 프리시즌에 합류한 후 현재 8개월째 해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생각을 해봤는데 지금 제가 해외에 나와 있는 한국 선수 중에 한국에 가지 못한 기간이 가장 길더라고요(웃음). 다른 선수들은 여름에 다 최소 한번은 다 들어갔다 나왔거든요. 저만 지금 8개월째 달리고 있는데(웃음). 저는 한국에서 하루라도 자고 올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단 하루라도 갔다오고 싶을 만큼 지금 한국이 너무 그리워요.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은 많이 무뎌진 상태죠. 제가 5~6월 정도에 캐나다에 있었을 때 '이게 향수병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러면서 생각을 해봤어요. 유럽에 있는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땅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라면 정말 모두가 존경을 받아야 되고 존중을 받아야 되고, 박수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정말. 이런 환경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도전을 해나가고 있는 선수들한테 박수를 보내줘야 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대표팀에 차출이 되면 한국 선수들이랑 같이 훈련을 하고, 한국말 하면서 한국음식 먹고, 하루이틀 집에서 자고 다시 해외로 넘어오잖아요. 몸은 힘들어도 그렇게 하면서 분위기 전환을 해주는 건데 저는 그걸 올해 단 한번도 못하게 돼서...(웃음)"

황인범은 일본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최우수 선수상을 받은 지난 12월 동아시안컵 전까지 국내 축구 팬들의 끊임없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대표팀 경기가 열린 날이면 인터넷에 게재되는 축구 관련 뉴스 기사의 댓글란은 그를 향한 비난으로 가득찼다. 대다수 선수가 평소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며 태연한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을 향한 비난의 강도가 지나칠 정도로 높아진다면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적어도 인터넷 댓글로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선수가 걱정해야 할 일은 없어졌다. 최근 포털사이트 스포츠 뉴스 기사의 댓글 기능이 차단됐기 때문이다. 황인범은 작년까지 댓글로 형성되는 '비난 여론'에 가장 크게 시달린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선수에게는 포털사이트의 뉴스 기사 댓글 기능 폐쇄가 어떤 영향을 줄지가 사뭇 궁금했다. 이에 황인범은 작년까지 빗발친 자신을 향한 비난에 대한 불평은 결코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쏟아지는 비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거는 게 선수의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요즘 인터넷에서 뉴스 기사를 보면 아주 조용하더라고요(웃음). 저도 댓글을 봤었죠. 대부분 봤었고. 모든 선수들이 사실 댓글의 영향 받았어요. 저는 부정적인 말들이 많아졌을 때는 아예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질 않은 적도 있어요. 작년 연말 즈음부터 안 봤는데, 최근 댓글창이 닫혔다는 얘기를 듣고 기사를 보니까 뭔가 허전한 느낌이더라고요(웃음). 느낌이 뭔가 이상하고. 안 좋은 말도 많았지만, 좋은 말도 항상 있었던 곳인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부정적인 댓글을 선수가 봤을 때, 그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좋은 말을 들었을 때는 기분이 좋겠지만, 안 좋은 말도 많으니까. 저야 그래도 스스로 멘탈적인 부분에서 나름대로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도 솔직히 영향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저보다 댓글을 보면 의기소침해지고 이런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많은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영향을 안 받겠어요. 저보다 어린 후배들이나 아직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런 친구들한테는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고, 본인이 뭐가 부족한지를 파악하고, 채워나가야 될 부분을 잘 알고만 있다면, 그리고 갈 길을 걸어나간다면 결국에는 다 지나가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 친구 (황)희찬이를 보면... 그런 걸 가장 잘 이겨낸 친구잖아요. 저도 친구로서 희찬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요. 저도 '희찬이처럼 자기 갈 길 가고, 묵묵히 자신 있게 가다보면 분명히 인정받고 하는 날이 온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그 길을 가고 있으니까요. 우리 후배들도 댓글이나 그런 비난을 아예 신경을 쓰지 말라고는 못하겠지만, 묵묵히 자기가 가야하는 길을 많이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저도 대표팀 안에서 선배 형들이, 또는 스태프 선생님들이 저를 인정해주시고 팀에서 제가 맡은 역할을 다 알아주시고, 제가 희생한다는 걸 알아주셨기 때문에 위로를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하지만 분명히 제가 채워야 부분은 채우자는 생각으로 지금도 가고 있는 거 같아요. 모든 선수들이 많이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글/인터뷰=한만성 기자
사진=황인범




September 08, 2020 at 04:32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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